할머니와 손자 혹은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부모의 '결핍'이 우선된다. 부모의 부재를 부모의 부모인 할머니가 보듬는 것.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세대 차이가 나는데 조부모와 손자(녀)는 오죽할까? 그래도 '내리사랑'은 그대로다. 부모-자식보다 낯설며 신파의 더 없이 적절한 소재라 은근히 나온다.

 

이번 테마영화에선 <할머니의 내리사랑>이란 주제로 집으로 / 계춘할망 / 감쪽같은 그녀를 묶어 소개해본다. 

 

집으로

 

이 영화가 가문의 영광에 밀려 2002년에 흥행 2위를 한 게 아쉽다.

영화인 걸 알지만 페이크 다큐인가 속을 정도. 진짜 철부지 같은 유승호의 연기와 정말 손자를 대하는 것 같은 할머니. 

통닭은 먹고 싶다는 투정에 삼계탕을 해준다든가, 직접 머리를 잘라주며 유승호를 미치고 팔짝 뛰게 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웃긴다.

유승호가 할머니를 위해 실을 고리에 걸어주는 장면들은 분명 의도되었지만 울컥하게 만든다.  

혹시 이 영화 안 본 사람들 나온지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추천한다.

아래에 소개할 계춘할망이나 감쪽같이 그녀의 지나치게 의도된 신파에 실망한 사람들은 집으로를 보며 앞으로도 계속 나올 이런 류의 영화에 편견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계춘할망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조부모-손자,손녀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나오기에 관계를 비트는 시도가 나오기도 한다. 

계춘할망은 약간이라기에는 클리셰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진부한 시나리오지만 나름 반전이 심어져 있긴 하다. 이 관계의 반전마저 없었으면 러닝 타임 낭비였을 것이다.

윤여정과 김고은 두 배우의 연기가 충분히 노골적인 신파를 이해하고 눈물을 흘려줄 수 있고, 제주도라는 공간이 시나리오가 가져다 주는 진부함을 없애준다. 

감쪽같은 그녀

 

나는 이 영화가 너무 노골적인 울리기와 불행의 전시로 슬픔보단 고통만 느꼈다. 

아이들을 활용한 것도 대상 연령층과는 동떨어져 있고, 중간마다 나오는 에피소드는 유치하고 소모적이다.

불행 전시 -> 맥 없는 이야기 -> 불행 전시의 흐름이라. 굉장히 작위적인 이야기.

김수안의 나 연기 천재에요. 하는 것밖에는 느껴지는 게 없었다. 

이런 류의 영화에 별 상황이 아닌데도 눈물을 쏟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추천할 수가 없다.

 

다시, 봄

웹툰 원작이라고 한다. 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이야기다.

나 혼자만 타임슬립으로 당연히 사건이 바뀐다. 자극적이진 않지만 그만큼 내용이 심심하다. 

영화는 중간마다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감상하는데 집중을 하게 만든 것 같다.

혹은 너무 짜맞추듯한 부족한 개연성과 내용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렇게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작 영화를 보면 설정 자체가 비극적이라 힐링물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벌새

거시적으로 보면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은 숲 안의 나무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한 개인을 보면 그 시대의 역사를 알 수가 있다. 

 

벌새는 정말 열광하면서 봤다. 김보라 감독은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라니 정말 놀랍다. 이번 주 열린 2020 부일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으로 수상됐다. 

 

필자는 1990년대 중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 영화를 꾸준히 보는데, 그 시대에(1994년) 만들어진 영화와 이렇게 과거로 거슬러 시대를 관조하는 영화는 같은 시대를 다뤄도 굉장한 차이가 있다. 

 

얼마 전부터 자꾸 내가 학생 시절이던 때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영화가 나온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 전부를 학교에서 보낸 필자로선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했다.

 

영화는 같은 세대이자 생애주기로 계산하자면 한 세대 위의 추억담인데,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그때의 그 모습으로 중학생 누나 또래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상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데, 개인의 추억과 회상에 그치지 않는다.

 

정말 담담하게 '은희'(박지후)의 '일 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1학기, 2학기 그렇게 '일 학년'을 다루는데, 이 안에서 맺은 관계(가족, 친구-남자,여자,동급생-,영지<김새벽> 학원 선생님)맺음과 끊김이 발생한다.

 

은희라는 개인을 차분하게 지켜보니 당시에 있던 일들이 보인다. 한 소녀의 성장담이자 당시 사회의 가장 비극적이었던 성수대교 붕괴 참사에 대한 환기와 위로까지 포용되어 있다. 

 

성수대교 붕괴가 영화의 끝을 장식하지만 은희의 '지켜봄'을 통해 정말 많은 문제를 도출시킨다. 하지만 감정 과잉시키지 않고 스쳐지나가듯 담담히 '지켜보는' 슬픔들이다.

 

영지(김새벽)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극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은희(박지후)의 크게 성장시킨다. 주인공을 맡은 박지후는 얼굴만 클로즈업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표정 연기가 정말 대단했다.

 

이 영화 정말 좋다. 영화가 끝난 후 부쩍 성장한 은희처럼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며 조금이나마 성장한 기분을 느꼈다.

나와 은희가 같은 시대를 살았고 성수대교 참사를 뉴스로 직접 보며 놀라고 슬퍼해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

소녀를 위로해줘. 개인을 위로하며 모두를 위로한다.

 

 

<스포스샷> 

지금은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듯
굵직한 사건들
감정 과잉시키지 않고 스쳐지나가듯 담담히 다루는 슬픔들

 

 

 

최장 장마-폭우로 인해 비 많이 내리는 영화만 소개하고 있는데, GP 506을 빼놓으면 곤란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내용인데, GP 벙커 바깥은 언제나 폭우다.

오죽하면 이 영화 떠올리면 인상 깊은 장면보다 빗소리가 들릴 정도일까.

 

GP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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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 post 

군사 주력 부대의 최전선에 배치되어 적을 관측하거나 주변 지역을 수색하는 부대 또는 경계 초소.

출처-우리말샘(네이버 단어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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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GP를 남북한 군사합의로 파괴했기에 어떻게 보면 추억의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전부 없앤 건 아니지만)

알 포인트를 만든 공수창 감독의 후속작이다. 

 

GP에서는 실제 군대에서도 비극적인 일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배경이 GP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과 스릴러의 자격을 갖춘다. 

 

알포인트보다 더 좁은 한정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데 사건을 파헤치며 뒤로 돌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클라이막스 돌입하기 전에 반전도 하나 있고 군 특유의 폐쇄성과 보고 누락 그리고 장성의 아들을 찾아야 하는 설정도 있어 현실적이면서도 군대 내부 비판도 있다.

 

좀비물이기도 한데 그래서 시대를 앞서 간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중구난방인 점은 옥의티. 이야기 전달이 잘 안 된다.

전작인 알 포인트의 안개처럼 눈 앞에 잘 안 보이고 착 깔리는 분위기와는 또 다른 폐쇄적이고 뭔가 숨겨져 있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있지만 산만하게 들떠 이야기 전달이 잘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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