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퀘스트(이하 '드퀘')를 진 엔딩까지 본 후에 밀려오는 감동과 함께 클래스란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국민 RPG라고 불리는 드퀘는 플랫폼빼고는 바뀌는 게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애니매이션 같은 카툰그래픽과 함께 3D로 다양한 이벤트 연출이 나온 PS2 드퀘8의 경우 기존에 즐기던 마니아들에게 충격과 거부감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이번 드퀘11은 기존 드퀘를 즐기던 유저가 드퀘 8를 봤을 때 느꼈던 충격 이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드퀘8이 비주얼적인 시각충격이었다면, 이번 드퀘11은 겉모습은 드퀘이지만 완전히 쇄신된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험의 서 작성 및 교회에 가서 세이브를 하는 등 전통적인 인터페이스를 보여주고 있지만 '예우'차원에서 보여지는 것뿐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자동저장 및 모험의 서 역시 여러개의 세이브 슬롯과 NPC가 끊임없이 다음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등 전통이라는 고집을 버리고 시대의 흐름을 모두 따랐다.
대표적으로 드퀘를 처음 한 사람들이 가장 당황하는 경우인데(이걸 노리고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던전이나 집 내부에서 루라를 쓸 경우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는 연출과 함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이번 작은! 루라를 쓰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이 된다.
난이도 역시 저레벨 플레이 등 플레이어 스스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있었지만 드퀘의 난이도는 동일했는데, 이번에는 더 낮아진 모습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좌절 없이 최소한의 레벨 노가다로 게임 엔딩을 무난하게 보도록 설계가 되었다. 그리고 따로 '적 강함'이라는 모드를 놔서 예전 유저 및 강한 난이도의 게임 플레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불만을 갖지 않게 만들었다.
적강함 난이도는 예전 드퀘의 난이도보다 훨씬 높다. 드퀘는 전통적으로 초반부 노가다와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클리어가 어렵지 않지만 적강함 모드는 그걸 넘어서는 난이도이기 때문에 다크소울 같이 순간 반응력과 패턴 분석으로 플레이어가 성장해 적들을 무너뜨리는 그런 부분보다는 레벨노가다와 장비 맞추기로 잡는 거라 성취감도 적고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일반모드로 진행하자. 턴제의 특성상 아무리 자동저장이 있어도 여러 번 게임 오버가 나면 일반 액션게임보다 더 현타가 오게 마련이다.(드퀘 노멀 난이도 --- 기존 드퀘 시리즈 난이도 --- 적강함 난이도 이렇게 보면 되겠다.)
플레이어가 오프닝을 본 후 타이틀 화면이 나왔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은 두 가지다. 0으로 되어 있는 볼륨을 높이는 것과 전투 카메라 시점을 고정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대로 놔둬도 되지만 음성이 없으면 심심하다. 드퀘 8의 이벤트 연출조차 상상력을 제한한다면(어떻게 그런 생각을?!) 거부감을 느낀 일부 골수 2D 드퀘 마니아들의 경우 캐릭터 음성(그것도 영어)이 나오는 게 적응 이상의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일 수가 있겠지만 역시 음성이 없으면 심심했다.(성우의 연기도 나쁘지 않고, 스위치판은 일어 음성이 추가된다고 한다.)
전투 카메라 시점은 고정을 해놓지 않으면 캐릭터를 무려 이동(?!) 시킬 수가 있는데, 기존 드퀘의 1인칭으로 적만 비추는 방식에서 혁신적인 변화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동만'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는 정말 쓰잘데기가 없는 요소다. 카메라를 돌려가며 캡쳐할 게 아니라면 고정 시점이 원활하다. 잠시나마 이동 거리로 데미지가 덜박힌다거나 기대를 걸어봤지만 아니었다.
전투는 전통적으로 기합 모으기 후 공격이 보스전 필승인데, 기합이 없어지고 존과 캐릭터간 발동 조건에 따른 연계기를 도입했다. 캐릭터는 턴제 RPG 특성상 전통적으로 레벨이 오르며 기본 능력치가 올라 수월하게 진행이 가능하지만(=레벨이 깡패, 일정 시간 레벨노가다는 필수&감수) 스킬트리로 인해 육성의 자유도가 대폭 늘어났다. 각 무기별로 스킬트리가 있어 한 캐릭터로 여러 개의 아이템과 특성으로 육성시키는 맛이 있다.
제련요소도 도입이 되었는데, 한국 모바일 게임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드퀘에 대한 모욕이다! 처음 제련 요소가 나올 때는 번거로울 것 같은데 꼭 해야 되는 요소가 아닌가 싶어 거부감이 들긴 했다. 하지만 막상 하면 은근히 성공을 하기 위해 집중해서 전략을 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제련은 레벨이 높으면 성공하기가 수월하긴 하지만 집중력이란 걸 둬서(한국 모바일 게임이었다면 이 집중력에 부분유료가 가해지겠지만) 이 한계치 안에서 여러 특수스킬을 잘 계산해 제련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제련은 제한된 집중력 안에서 제련율을 높이는 각종 스킬을 잘 계산해서 넣어야 하기 때문에, 리듬액션처럼 타이밍 맞추기 요소보다는 전략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슈퍼링등 게임을 수월하게 만드는 아이템은 레시피를 구한 후 제련을 통해 제작해야 하지만 필수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없다. 필자는 진엔딩 볼 때까지 캐릭터 의상 바뀌는 아이템 한번도 세트로 맞춘 적이 없다.
턴제 전투는 간결하면서도 전략이 필요하고 다소 운도 따라야하는 중독성 있는 방식이지만 최신 게임의 흐름상 아무래도 단순하고 지겹워지게 마련이다. 간간히 자동전투도 곁들여서 해야 덜 물리는데, AI가 뛰어난 편이 아니라 아쉽다. 전투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드퀘의 클래식모드를 따로 두고, 다음 작품에서는 혁신적인 변화가 한번 가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브퀘스트는 이미 NDS로 나온 9에서 도입이 되었지만 11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위쳐3 같은 게임의 깊이 있는 사연을 가진 퀘스트를 기대하면 안 된다. 간단한 심부름이나 몬스터를 잡아 아이템 가져다 주기, 제련으로 아이템 만들어 주기 등 간단한 방식이다. 그렇지만 캐릭터 여럿을 존 상태로 만들어 연계기로 클리어해야 하기 때문에, 존은 모은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예측 불가한 상황에서 발동되는 형태라 은근히 귀찮게 만든다. 외형을 바꾸는 장비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해야 할 동기부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게 단점이다.
정말 독특한 그래픽을 지녔는데, 카툰도 아니고 실사도 아닌데 정말 동화같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하다. 이건 정말 그래픽 수준도 높지만 굉장히 개성있기 때문에 독창성에서 정말 좋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컨셉의 배경 그래픽도 그렇고 캐릭터 이벤트 연출도 보는 맛이 배가된다.
하지만 사운드가 최악이다. 드퀘의 전통적인 사운드가 수준이 낮을리가 없다. 첫 구동할 때의 그 전통적인 사운드 모험의 서를 펼칠 때, 케토스르 부를 때 귓가에서 먼저 울려퍼진다. 문제는 한 단계 낮은 단계의 사운드 음질이라고 해야 하나 현 플랫폼에 어울리는 레벨이 아니라는 말이다.
드퀘가 11편까지 나오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스토리 때문이다. 이런 일직선 방식의 게임에선 스토리로 유저를 붙들어놔야 한다. 그리고 드퀘는 완벽하게 이 부분을 만족시킨다. 드퀘 전통적으로 용사의 후손이 동료들과 힘을 합쳐 마왕의 방해를 이겨내고 평화롭게 만든다는 이야기이지만 세부적으로 진행을 하면 전설로 내려오는 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충격을 줘서 흥미를 가지게 만들 스토리로 가득하다.
특히 이번작의 스토리는 그 어떤 시리즈보다 함께하는 단순히 보조로 전투를 도와주는 동료들의 비중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8부터 용사 일행에 대한 개성이 늘어나긴 했지만 이번 11은 정말 역대급이었다. 특히 이번 작에서 가장 사랑을 받을 거라 단언할 수 있는 베로니카는 엄청난 존재감과 엔딩 후 진엔딩을 보기 위한 엄청난 동기를 부여한다.(더 이상은 스포가 되어 말할 수가 없다.)
이번 작은 게임 내에서 정식으로 나눠지진 않았지만 시련에 빠지는 1부 동료를 찾고 마왕을 잡고 평화를 되찾는 2부 그리고 (스포읍읍) 3부로 나뉘어진다. 드퀘는 전통적으로 마왕을 잡고 엔딩을 봐도 끝판왕격인 존재가 있는데, 이건 추가적인 요소일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엔딩을 본 후부터가 진짜 드퀘의 본 스토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숨겨진 요소가 아니라 분류만 엔딩 후로 놨을 뿐 반드시 진행을 하게 만들었다.
드퀘를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며 플레이했다면 단 하나의 망설임 없이 진행을 할 것이고 후반부에 어렵다 노가다가 필요하다 그런 말이 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번 언급했듯 외형이 바뀌는 능력 좋은 장비 세트를 맞추지도 않았고 카지노 노가다에 이어 기적의 물방울로 스펙타클쇼 등의 연계기를 이용 메탈킹을 불러내는 노가다 같은 거 하지도 않았다.
슈퍼링도 제련 실패한 거 끼었고, 메탈슬라임이라도 불러내서 레벨을 올려볼까 하다가 그냥 끝판왕을 잡았는데, 레벨 60중반정도면 일반 장비로도 여러 번 반복하더라도 결국 잡아낼 수가 있다. 그리고 편의상 나눴지만 3부 끝까지 꼭 플레이를 하길 바란다. 2부 엔딩만 봤다면 드퀘의 시나리오를 온전히 즐겼다고 보기 힘들다. 3부를 위해 1부와 2부가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퀘11을 진엔딩까지 다 보고나면 기존 유저와 새 유저를 모두 잡겠다는 제작사의 의지가 느껴진다. 전통을 고수한 방식은 전통적인 인터페이스로 보여줬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 세심한 자동이동과 진행 설명, 기존 DQ 유저들은 놀라 까무러칠 정도의 편의성을 도입했다. 파판15와 다르게 기존 유저에게 우리는 단단하게 자신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일직선 형태의 JRPG를의 전통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그래서 11의 시나리오도 로토시리즈인 1-2-3 그 전으로 시간적 배경을 설정한 것 같다. 11을 하고 진 엔딩을 보면 3-1-2로 이어지는 로토시리즈를 다시 플레이하고픈 생각이 들게 만든다. 본작의 부제인 "지나간 시간을 찾아서"처럼 지나간 (로토)시리즈를 찾아서 해보고 싶다. 드퀘12 언제 기다리냐?!
선택의 순간
★★★★☆
클래스란 이런 것이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혁신적으로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부분은 모두 수용했다.
적당한 타협으로 여전히 드래곤퀘스트라는 브랜드와 일직선 진행의 RPG의 굳건함을 보여줬다.
소위 일본식 RPG로 불리는 과거 일직선 스타일을 싫어한다면 해볼 이유가 없다. 플레이타임을 굉장히 잡아먹는데다 전투도 턴제 방식 안 맞는 사람은 절대 안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게임을 접해보지 않은 유저나 예전 90년대 RPG 이후 게임을 끊었던 사람들이라면 100시간 넘게 즐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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