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의 동명의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 '나의 독재자'만큼의 변신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설경구는 열연한다. 


원작 소설은 살인자(설경구)의 독백을 직접 듣듯 엄청난 가독성으로 읽힌다. 

영화의 경우 크게 지루하진 않지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은 주지 못한다. 


영화에서 원작보다 못한 건 두 가지다. 


첫째로 소설은 주어진 게 알츠하이머 걸린 연쇄살인마의 기억 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가 끝까지 헷갈린다. 소설을 읽으면 캐릭터에 대해 자신이 쌓아놓은 상상이 무너졌다가 뒤바뀌었다가 하며 나중에는 나오는 인물들의 정체와 진실을 의심하게 되고 추리를 하며 맞추거나 빗나가거나 상상을 하는 쾌감이 있는데, 영화는 당연히 모든 부분이 보여지기 때문에 독자의 개입이 없다. 감독판도 따로 있고 약간 애매하게 결말 부분을 처리하긴 했지만 크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두 번째는 캐릭터의 매력이다. 작중 인물을 소설과 다르게 설정했는데, 이게 소설보다 떨어진다. 원신연 감독은 필모로 '구타유발자'가 있어 캐릭터 연출에 굉장히 기대를 했는데, 너무 평범해서 배신감을 느꼈을 정도다. 작가가 설정한 치밀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를 다른 캐릭터 설정으로 대체했는데 왜 그랬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마이너한 각색이었다.    


특히 주인공들의 설정은 소설에서 살인을 즐기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소시오패스가 딸을 사랑하고 원죄를 넘기지 않으려는 나약한 캐릭터로만 그려진 점 그리고 연쇄살인마가 또 다른 연쇄살인마라고 의심하며 긴장감 넘치는 라이벌 구도로 그려지는 인물이 경찰로 바뀌며 단순한 대결구조로 그려지는 점, 설현은 남자 캐릭터 사이에 끼어 들어간 존재감 없는 여자 캐릭터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시 강사나 수강생을 너무 코미디로 가볍게 나온 것도 불만. 분위기가 확 깨진다.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끊임없이 연쇄살인마를 의심하는 경찰도, 영화에선 경찰 서장 오달수로 전형적인 정 많고 가벼운 코미디성 캐릭터로 바뀌었는데 미스 캐스팅이었다. 차라리 공공의 적 강철중에 나오는 엄반장처럼 진중하면서 의심하는 그런 캐릭터가 낫지 않았을까 싶다. 왜 소설에 나온 캐릭터 설정을 가져다 쓰지 않았을까?


살인자의 기억법은,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 실망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이미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읽어가면서 느껴지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안 보고 영화만 본다면 플롯이 좋기 때문에 대단하다 이런 감탄은 못 해고 보통 이상의 재미는 느낄 것 같다.


역시 소설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말이 장편이지 경장편 수준으로 두껍지 않고 워낙 속도감 있게 읽혀서 영화 보는 시간만큼만 투자하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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